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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제  목 : [설교요약]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 조회수 : 641
  성경본문 : 에스겔 18:19~24 설교일 : 2019-03-10
  설교자 : 김성진 목사

  사람들은 연결 짓기를 좋아한다.

어떤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 그 관계된 일까지 싫어하고,

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 그 일까지 좋아하게 된다. 이런 것

이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한 쪽으로 치우치는 편벽된 나쁜 점이 더 많이 나타나서 사

람으로 정의롭지 못하게 하고 불행에 빠지게 한다.

 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실까? 오늘 말씀에서 살펴보면,

첫째, 하나님은 공명정대하시며 정의로우시다.

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

은 언제나 공명정대하고 정의로우시다.

사람이 하는 일들은 아무리 잘한 일이라 해도 상대가 보거나 다른 쪽에서 보면 흠이 있

고 불의가 있고 누추함이 있다.

 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 보거나 위로 아래로 살

펴보아도 모두가 다 정의로우시다.

다만 하나님의 깊고 넓고 높으며 영원무궁하신 뜻을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

해하고 깨닫지를 못해서 감히 하나님의 뜻과 하시는 일들에도 잘못이 있다고 착각을

하는 것이다.

둘째, 하나님의 심판하심에는 연좌제가 없으시다.

 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현 시대에도 가문의 사람 중에 잘못한 사람이나 죄인이 있

으면 신원조회에 걸려 아무 잘못이 없는 본인이 중요한 자리나 승진에서 탈락되는 일

들이 있다.

  그러나 지금부터 약2,600년 전 까마득한 옛날에도 하나님께서 판단하심에는 연좌제

가 없어서, 한 가문에서 아버지가 중죄를 지었다 하여도 그 아들에게 어떤 책임이나

불이익이 전가되지 않으며,(19~20) 역시 아들이나 다른 가족들이 범죄를 했다 하여

도 그 부모에게 죄의 책임이나 불이익이 전가되지 아니한다.

  그런데 우리는 걸핏하면 서로 서로 연결과 연좌를 시켜서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미워

질 때 그 주위 사람들과 진행되는 일들까지도 싫어하고 미워한다. 예를 들면 시댁의

누가 잘못해서 싫어지면 시금치까지도 싫어하는 것들이며, 또한 어떤 사람이 좋게 여

겨질 때는 그 주변 사람이 잘못하고 있음에도 그냥 좋아하고 두둔을 한다. 처가 예쁘

면 처갓집 소 말뚝에까지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이다.

그러나 이렇게 연결시키고 연좌시키는 일들이 순기능보다 악기능 역할이 더 많아서 우

리의 삶에서 정의를 무너뜨리고 분열의 패거리를 만들며 사람들을 불화 반목케 하는

원인이 된다.

셋째,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일대일이며 현재적이시다.

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상벌을 내리실 때는 집단이나 여럿씩을 묶거나 가족적으로

상대하시는 것이 아니고,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든지 한 사람, 한 사람, 일대일로 심

판하시고 상벌을 내리신다.

  가인과 아벨에서도, 노아의 홍수 때에도 소돔 고모라 때에도 다 집단이 아닌 개인 개

인이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서 심판을 하시고 상벌을 내리셨다. 즉 가족들

중에 믿음이 진실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옆에 있는 믿음이 없는 가족이 덤으로 구원을

받는 것는 것도 아니며, 또한 가족들 중에 악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악인 때문에 선

한 믿음의 사람까지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.

  또한 옛날에 잘 믿었느냐? 안 믿었느냐? 옛날에 순종했느냐? 안 했느냐? 등으로

옛날 일 때문에 심판이나 상벌을 좌우하시기 보다는, 언제나 현재적으로 잘 믿느냐?

안 믿느냐? 현재적으로 순종하느냐? 불순종하느냐? , 현재에 어떻게 하느냐에 중

점을 두고 살피시고 심판과 상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. (21~24) 즉 과거를 묻

지 아니하시고 현재를 보시는 하나님이시다.

넷째, 하나님께는 유전무죄나 무전유죄가 없으시다

  사람들이 왜 그리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부자가 되려 하는가?

물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 돈이 자기를 보호해 주고, 갑 질

을 할 수 있도록 높여주고,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착각을

하고 있기 때문이다.

과연 그렇기도 하다. 현실의 삶에서 돈의 위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.

그렇기에 유전무죄와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.

그러나 우리 하나님께는 그런 것들 즉 돈의 위력이 통하지 않는다.

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.

 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며

 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.“ (역대하 19:7)

이럼에도 카톨릭성당에서나 이단들에서는 속죄표라는 것을 팔아서 돈의 위력으로 자

기들의 죄와 그 죄의 형벌에서 건짐을 받고자 한다. 이는 죄에 죄를 더하는 일로 지옥

형벌을 자초하는 것이다.

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사함을 받으며, 성경말씀을 순

종할 때에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.

 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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